Loading...
This site is best viewed in a modern browser with JavaScript enabled.
Something went wrong while trying to load the full version of this site. Try hard-refreshing this page to fix the error.
팬서비스 3대짤
swswswe
123123123
호랑이의 출몰로 피해가 심해지자 조선은 호랑이 사냥부대인 착호군(捉虎軍)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조선 성종 때는 착호군 규모가 440명에 달할 정도로 확대됐다. 그만큼 호랑이 출몰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감이 높았다는 얘기다.
이들 착호군은 샤냥에 나설 때 주변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구렵군(몰이꾼)으로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원성도 샀다고 한다.
착호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호환은 끊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국가는 호랑이를 잡아 바치는 신분을 평민으로 올려주고, 평민은 세금을 면제해 주는 등 호랑이 사냥을 적극 장려했다.
산지 개간으로 터전을 잃은 호랑이는 인간들의 사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개체수는 급감하기 시작했다. 조선말에만 해도 서울의 야산에서도 나타났던 호랑이는 1900년대 들어서는 터전을 잃고 백두산 쪽으로 넘어가거나, 전라도 섬 지방 일대로 들어왔다고 한다.
호랑이 사냥에 관련돼 사진과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1900년대 초 호랑이 사냥을 했던 서양인들에 의한 것이다.
이들의 기록을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점이 호랑이 사냥 장소가 주로 전라남도 해안 일대라는 점이다. 조선의 호랑이하면 백두산이나 지리산을 연상시키는 통념과는 많이 다르다.
1900년대 초 중국과 한국 등에서 호랑이 사냥을 왔던 영국인 포드 바클레이는 ‘만주호랑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을 보면 그는 목포의 비녀산, 즉 현재의 양을산에서 호랑이를 잡았다.
dfer1234